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개변된 역사 (문단 편집) === 2차 세계대전의 시작:서부전선 === 마침내 1940년 6월 24일, 영국의 스케퍼플로를 비롯한 주요 군항과 비행장을 잠수함과 뇌격기, 폭격기를 동원해 대대적으로 기습 공격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라 로크의 계략으로, 프랑스 해군은 빈 수송선을 미끼로 이용해 로열 네이비 잔존 해협 함대를 끌어냈지만 오히려 수송선 여러 척을 상실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끝내 해협 함대를 전멸시킨 프랑스군은 영국 남부에 50만의 프랑스군을 상륙시키는데 성공한다. 드골은 영국군의 저항이 거세자, 런던을 우회하기로 결정하고 [[버나드 로 몽고메리]]와의 일전을 준비한다. 그러나 몽고메리는 드골의 프랑스군에 맞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잘 살려 프랑스군을 가로막았고, 드골의 진격은 가로막힌다. 이탈리아가 위기에 빠졌다는 보고를 들은 라 로크는 어차피 독일과의 일전은 예고되었으니 차라리 먼저 200만에 달하는 프랑스군으로 벨기에를 우회하여 독일 루르 지방을 공격하려는, 역슐리펜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문제는 상대는 2차대전의 그 막강했던 전성기 소련군을 틀어막은 방어의 사자, 발터 모델의 등장이 예고되었고, 기동전 전문 장군들은 영국 본토에 발이 묶여 제대로 된 기동전을 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드는 상황. 이후 처칠과 몽고메리의 무리한 공세를 막아낸 드골은 잉글랜드 중부와 런던을 차단시키는데 성공하지만, 독일 제4제국 루프트바페의 개입으로 비등했던 제공권은 점차 영독 연합군에게 넘어가고, 이에 드골은 라 로크의 런던 공세 명령을 씹고 현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 영불해협에서의 결전에 프랑스 해군은 초반에는 영국 전함 라밀리즈와 독일 해군 중순양함 블뤼허를 격침시키는 등 우세를 점했고 철수하려 했으나 갑자기 비스마르크의 돌격으로 됭케르크가 격침되자 분노하여 다시 함대를 돌려 비스마르크를 격침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을 노린 루프트바페의 급강하 폭격대가 긴 해전으로 지친 프랑스 해군을 급습[* 무려 '''400기에 달하는 슈투카 편대가''' 프랑스 해군을 조져버리기 위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리슐리외와 스트라스부르가 격침되고 그 외 많은 함선들이 격침되거나 손상을 입어 프랑스 해군은 무력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50만 중 5만의 사상자를 낸 상황에서 넓어진 점령지에 따른 주둔 병력의 분산 증가와 처칠의 항전의지로 본격적인 사보타주를 시작한 시민들과 점령군 간의 갈등과 점령군의 전쟁범죄로 인해 드골은 전선을 축소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영국에 도착한 롬멜의 기갑부대가 기습을 가하면서 기존의 프랑스 전차와도 대등하게 싸울 정도로 개량된 독일 전차들에게 피해를 입으며 9만명의 병력 손실을 입는다. --롬멜이 와해된 프랑스 군에게 직접 와서 항복시키고 그걸 들은 프랑스 군은 항복하는 어이없는 상황 문제는 저거 원역사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그 동안, 본토에서는 작전명 보나파르트란 이름으로 벨기에 침공이 시작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전훈과 낙후된 명령 및 지시 체계 덕분에 보안에는 성공했지만, 교통체증등 부대간의 혼란이 발생하여 진군이 늦어졌다. 덕분에, 먼저 공격을 시도했던 국경 부대는 다시 재정비한 벨기에군에게 밀려난다. 그래도 병력이 모인 후 압도적인 숫자로 벨기에군을 밀어냈고, [[워털루 전투]]가 있던 브뤼셀 인근에서 벨기에군을 밀어 붙인다. 그러나 이내 영국에서 돌아 온 루프트바페와 차출된 모델의 기갑부대가 지원을 나오면서 패배하게 된다. 게다가 2차 수송선단 역시 유보트에게 전멸하면서 석유 비축분이 많이 떨어졌고, 사실상 해군과 공군의 연료를 전용하면 육군은 3개월치 연료가 남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국과의 전쟁동안 독일을 경제하기 위해 비밀 협조를 취한 소련과 본격적인 동맹을 고려중이다. 이후 독소전쟁이 벌어지며, 독일군 주력이 소련으로 향한 틈을 이용해 200만 병력과 2천대의 전차를 동원해 아르덴을 다시 공격한다. 그러나 주력이 [[르노 AMR-33/35]]등 경전차 위주에 독일제 장비로 무장한 벨기에군과 네덜란드군의 치열한 방어전 및 독일군의 역습으로 30만의 피해를 입는다. 그 와중에도 [[막심 베이강]]이 무리한 공격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엘랑 비탈]]과 애국심까지 동원하여 과거 1차대전의 참호전을 재현하게 된다. 지크프리트 라인의 독일군을 견제하고자 엄청난 국방력을 동원했던 마지노선에 50만 병력을 유지하는 중이며, 결국 피해탓에 공세를 중지시킨 뒤 참호를 구축한다. 유보트에게 시달린 와중에 영국 해군 군함들이 새로 건조되거나 수리를 마치면서 모든 해상보급로가 차단당한다.이탈리아가 항복하며 모든 식민지를 영국에게 넘겨주자, 연합군 병력을 분산시키고자 [[FT-17]]과 [[AMR-33/35]]로 무장한 [[알제리]]의 식민지 부대를 영국령 아프리카 식민지로 진격시키지만 에티오피아의 참전으로 궁지에 몰린다. 결국 연료를 아끼고자 연합국의 크리스마스 휴전 제안을 받아들이며, 전 국방장관인 [[모리스 가믈랭]]과 급진당을 중심으로 쿠데타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그래도 소련의 [[T-34-85|T-34]]와 [[4호 전차]] 개량형을 목격한 뒤 S-35의 개량으로 개발되던 S-40에 장갑을 강화하고 장포신 7,5cm 주포를 장착시켜 개발하고, S-35와 함께 소방대로 편성시키는 등 독일의 전술을 연구하여 독일의 미끼 공격을 막아낸다. 라 로크는 프랑스에 유리한 분위기에서 평화 협상을 통해 어떻게든 프랑스를 유지시켜려 하지만 안 그래도 국방장관인 [[필리프 페탱]]과 총사령관 [[막심 베이강]]을 위시로 한 군부가 정부와 갈등을 벌이며 폭주하는 와중에 승리에 고무된 군부는 독일의 의도대로 170만 병력을 동원해 반격을 지시한다. 이에 라 로크는 드 골에 동조하는 소장파 장교였던 [[장 드라트르 드타시니]]을 설득시켜 그의 병력을 예비대로 남기고 가믈랭을 체포하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S-40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숫자도 부족한데다가 폭격기만 1천대에 이르는 루프트바페의 엄호를 받는, 20만 병력과 1,800대의 4호 전차로 이뤄진 구데리안 부대에게 포위당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결국 각각 코르트리크와 니우푸르트 근교 해안에 2군과 7군의 20만 병력 그리고 1군의30만 병력이 포위되는 등 보나파르트 작전 당시 투입된 200만 중 간신히 100만을 수습한채 모든 벨기에 영토를 내놓는다. 게다가 알제리와 레바논-시리아에서는 각각 에티오피아군과 영국군의 공격을 받았고, 영국의 넬슨급 전함들의 함포사격과 구식 독일군 무기 및 이탈리아군 노획무기로 무장한 에티오피아군에 의해 리비아의 점령지를 모두 내어준다. 그나마 영국에 있던 드골의 프랑스군은 롬멜과 몽고메리등의 연합군 공격을 방어하며 질서있게 후퇴를 하는 중이다. 결국 소련의 공세를 이용해 휴전을 체결하기로 결정하며, 라 로크와 페탱은 각자 체포되어 연금되었던 가믈랭을 죽이고 실책을 벌인 베이강을 해임시킨다. 이 와중에 독일의 여론전으로 벨기에에서의 실책이 알려지며 내부에는 반전파와 집권당 사회당 사이에서 큰 혼란이 발생하였고, 평화협정에 나오지 않으면 파리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자 하루만에 협상장에 나타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